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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속에서 피어난 작은 증오

그리움 속에서 피어난 작은 증오

 

그리움 속에서 피어난 작은 증오

살아가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감정을 마주한다. 기쁨, 슬픔, 설렘, 그리고 그리움. 그중에서도 그리움은 참 묘한 감정이다.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아픈 만큼이나 따뜻하기도 하다. 그리움은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게 하고, 그 시간 속에서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어느 날, 아주 오랜만에 학교 친구와 연락을 하게 되었다. 우린 참 친했지만, 어쩌다 보니 멀어졌고, 더 이상 얼굴을 마주할 수 없게 되었다. 서로의 일상 속에서 잊힌 줄 알았던 그 친구에게서 갑작스레 연락이 왔을 때, 나는 의외로 그리움보다는 작은 짜증이 먼저 밀려왔다. 왜 이제 와서 연락을 하지? 이 시간 동안 왜 아무 말도 없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문득, 한 드라마 속 대사가 떠올랐다. "단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어. 어떤 증오는 그리움을 닮아서 멈출 수가 없거든." 송혜교가 했던 그 대사는 내가 그 친구에게 느끼던 감정을 정확히 설명해주었다. 나는 친구에게 연락이 없어서 조금 서운하고 화가 났지만, 그 감정의 밑바닥에는 여전히 그리움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리움이 너무 커지면, 그것이 때때로 증오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말이 너무나 공감되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느끼던 그 짜증은 친구를 향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애정이 있었다는 것은, 그 친구를 한 번도 마음속에서 지운 적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람을 진심으로 잊으려면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않게 되는데, 나는 여전히 그 친구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그 친구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다. 오랜만의 연락은 어색함을 동반했지만, 함께했던 추억들은 금방 그 어색함을 지워주었다. 우리는 자주 만나지 못해도, 과거에 쌓았던 그 시간들 덕분에 다시금 친밀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결국, 나는 그 친구를 다시 만나면서 그리움과 작은 짜증이 어떻게 얽혀 있었는지 깨달았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인간 관계에서 '기억'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된다. 우리는 누군가를 잊지 않으려고 애를 쓰기도 하지만, 때로는 너무 그리워서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왜곡되기도 한다. 그 감정이 사랑일 때도 있고, 때로는 증오로 변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결국은 그리움에서 출발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맺고, 또 수많은 관계를 잃는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그리움은 남아도, 현실의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느라 바빠지기 때문이다. 그리워하는 마음이 너무 커져버리면, 그 감정은 때때로 우리를 괴롭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움이 사랑의 또 다른 형태임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 감정이 증오로 변해버리기 전에 좀 더 현명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아프지만, 그 아픔 속에도 따뜻함이 깃들어 있다. 송혜교의 대사가 말해주듯이, 그리움과 증오는 매우 닮아 있다. 하지만 그 차이를 이해하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진다면, 증오를 멈출 수는 없더라도 그 안에서 따뜻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나는 다시 그 친구와 소통하며, 그리움을 새롭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과거의 서운함이나 짜증이 아닌, 그저 '그리웠다'는 감정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리움은 미워하는 감정이 아니라, 결국엔 사랑의 또 다른 형태임을 깨닫게 되었다.